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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by 참새∂ 2021. 2. 3.

최근들어 발생한 미얀마 쿠데타 사태로 인해, 현지의 치안과 더불어 미얀마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더욱 나빠지고 있다. 현재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의 군부는 급기야 국가고문인 아웅산 수치를 구금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번 포스팅에서는 뉴스에 자주 언급되는 아웅산 수치라는 정치인이 어떤 사람인지 간략하게나마 알아보고자 한다.

 

아웅산 수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일상

그녀는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의 선구자이자 미얀마의 실질적인 국가 원수이다. 어릴적부터 독립운동 지도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녀는, 인도의 델리 대학교, 그리고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각각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으며 미얀마의 엘리트 계층으로서 자라나게 된다. 옥스퍼드 대학때 만난 남편과 결혼을 하고 영국에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가고 있었다.

 

민주화 운동의 시작

이렇듯 평범하지만은 않은 학력을 가지고 가정주부로 살아오다가, 어머니 병 간호를 위해 1988년 영국에서 미얀마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 우연히 미얀마의 군사 정권에 대항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는데, 이때 군사 정부에서 유혈 사태를 일으키며 시위를 진압하게 된다. 이때 시위에 참가한 아웅산수치는 민족민주동맹이라는 정당을 창설하게 되고, 이후에는 민족민주동맹의 지도자로서 정당을 이끌게 되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정치에 참가하게 된 그녀는 정당의 지도자로서 리더쉽을 발휘하며 군사정권을 몰아내는 듯 했으나, 군부에 의해 가택연금에 처해지며 정치생명은 위기를 맞게 된다. 이후 미얀마의 군사정권은 독재와 부정선거를 거듭하다, 국제사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가택연금중이던 아웅산 수치를 풀어주게 된다.

 

정치가로서의 행보

아웅산수치는 줄곧 군부에게 있어선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택연금을 풀어주게 된 이유는 미얀마에서 국부로 통하는 아웅산 장군의 딸이라는 그녀의 특출난 신분 덕이 컸다고 한다. 이런 신분 덕에 수많은 미얀마 국민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으며 그녀는 가택연금이 해제된 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압도적인 표차이로 당선이 된다. 그와 더불어 그녀의 소속 정당인 민족민주동맹 역시 대부분의 의석을 차지하게 되며 본격적인 정치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이런 그녀의 민주화를 위한 열망으로 인해 많은 국민들은 미얀마의 군부 독재 정권이 곧 막을 내릴 것이라는 희망속에 더욱 그녀를 마음 깊숙히 존경을 하게 된다.

오점을 남긴 수치

군부에 맞설 민주화 운동의 선구자로서 정치력을 키워가던 아웅산수치는 2016년 3월 30일 미얀마 국가자문위원회 위원, 그리고 외무부 장관에 임명된다. 그러나 2016년부터 이슬람계열의 미얀마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이 미얀마군에게 탄압을 받은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살인과 집단 성폭행 등 반인도적인 범죄를 벌이게 된 미얀마 군에 대한 행위를 아웅산수치는 계속해서 부인을 하게 되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만, 이런 대량의 범죄를 눈감아준 그녀에게 국제사회에선 커다란 실망감을 표출하게 된다. 이로 인해 각종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상들이 철회되며 그녀에 대한 비판론이 커지게 되었다.

 

현재 미얀마의 정국은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불법 수입된 무전기를 소지했다는 다소 어이없는 이유로 아웅산 수치를 구금하기에 이르는 등 아웅산 수치를 가둬두기 위한 옹졸한 군부 정권의 수작이라는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앞으로 민주적으로 미얀마의 군부를 끌어내릴 수 있을지 전세계의 안테나가 미얀마를 향해 집중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