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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사고를 낸 에버기븐호: 수에즈 운하 알아보기

by 참새∂ 2021. 3. 29.

 

전세계 물류중 해상 물류의 1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수에즈 운하에서 최근 난리가 났다. 일본에서 건조하고 대만 회사인 '에버그린'에서 운용중이던 초대형 선박인 에버기븐호가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되었는데, 워낙에 크기가 클 뿐더러 무게가 꽤나 나가기 때문에 한번 좌초된 이상 복구하는데 1주일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그것도 하필이면 가장 좁은 수로에서 좌초되어 제대로 막아버렸다. 이로 인해 유가 상승과 각종 해운업과 관련된 전세계 물류 산업에 적지않은 타격이 가해질 전망이다. 이렇듯 전세계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이 수에즈 운하는 언제쯤 만들어졌으며, 왜 만들어졌는지, 이번 포스팅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수에즈 운하란?

지도상의 수에즈 운하의 위치

지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항로중 하나인 이 수에즈 운하, 수에즈 운하는 1869년에 건설된,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수로로 이집트에 위치해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운하는 이집트에 위치해 있음에도 이집트가 주도적으로 건설한게 아니라, 당시의 제국 열강들의 각종 이해관계가 얽힌 해외 자본의 결정체이다. 지중해에서 홍해로 길게 이어지는 이 수로는 과거 유럽의 제국들이 아시아와 교역을 할때 아프리카 대륙 남쪽에 위치한 남아프리카의 최남단인 희망봉을 통과하는 루트로 교역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면서 불필요하게 남극에 가까워 파도가 거칠고 바람이 쎄서 항해하기 위험하기로 유명한 희망봉 루트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또한 거리가 9,000km 이상 대폭 축소되는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며 해상 무역에서, 그리고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 되어버렸다. 이 수에즈 운하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 항로인지는, 현재 그 수가 줄었다지만 여전히 활개치고 있는 소말리아 해적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선박들의 숫자는 좀처럼 줄지 않는걸 보면 알 수 있다.

 

수에즈 운하 건설 역사

수에즈 운하의 역사는 기원전 600년대 고대 이집트 시절로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대규모 토목공사의 원조는 역시 고대 이집트 왕조 아니던가, 이때 당시에도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할 수에즈 운하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군용 선박의 이동, 그리고 기념비로 쓸 거대한 돌들을 운반하기 위함으로 고고학자들은 추측하고 있고 여전히 이에 대해 토론중이다. 현재처럼 일직선으로 가장 최단루트로 운하를 파내기란 당시의 기술로는 역부족인지라, 인근의 계곡까지 최대한 접근하여 수로를 파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수많은 인명피해를 내는 바람에 공사가 중간중간에 중단되기 일쑤. 결국 페르시아가 이집트를 정복했던 기원전 500년경, 현대에 만들어진 수로보단 작은 규모이지만 선박들이 왕래가 가능한 수로가 만들어지며 동서양을 횡단하는 교역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하지만 끊임없는 이집트 나일강의 홍수, 그리고 전쟁들로 인해 파괴되고 복구되어지길 반복하다가, 마침내 고대에 만들어진 운하는 결국 영구적으로 파괴되었다. 이후 16세기까지 고대 운하를 복구하려는 노력들이 있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간다.

 

오스만 제국이 이집트 영토를 통치하던 시대가 지나가며 수에즈 운하는 서서히 잊혀져 가다가, 19세기경 제국주의의 열강들이 동아시아와 교역 및 식민지 확보를 위하여 다시 수에즈 운하의 필요성에 대해 대두되기 시작했다. 또한 선박 기술의 발달로 만들어진 증기선은 바람의 영향을 거의 받질 않아 운하 개척이 절실해졌다. 

페르디낭 드 레셉스

 

시간이 흘러 강성하던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이집트가 독립을 하게되자, 프랑스는 당시 이집트 주재 외교관이었던 페르디낭 드 레셉스를 통해 이집트 운하 건설에 대한 특허를 받아내고, 만국 수에즈 해양 운하 회사를 건설하게 된다. 민간 및 주변국들로부터 투자금을 받아오던 프랑스. 이때 영원한 라이벌인 영국에서 이집트 및 오스만제국, 그리고 주변국들에 압박을 가하며 프랑스의 운하 건설을 견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69년, 결국에는 그토록 바라던 수에즈 운하가 완공이 되었으나, 이집트는 오랜기간 지속된 토목공사로 인해 거대한 빛더미에 눌러앉게 되었다. 자국을 보호해줘야할 프랑스는 당시에 프로이센과 전쟁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던 상황. 이 틈을 비집고 영국이 들어와 이집트의 만국 수에즈 해양 운하 회사의 지분을 모두 인수하게 된다. 당시 빚에 허덕이던 이집트로선 어쩔수 없이 영국에게 모든 지분을 팔게 되었고, 이로 인해 수에즈 운하의 경영권은 모두 영국에게 넘어가게 된다. 이후 전략적 요충지가 되어버린 수에즈 운하는 복잡한 국제정세속에서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나서야 이집트로 온전히 귀속되게 된다.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

수에즈 운하가 건설됨으로서 얻어진 경제적 이득중 첫번째는 엄청난 거리의 축소이다. 이전에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기 위해 지중해에서 인도양으로 가려면 아프리카 최남단을 반드시 지나가야 했는데, 이 거리가 수에즈 운하의 항로와 비교하면 무려 9천km 정도 차이가 나는 어마어마한 거리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대부분의 선단은 수에즈 운하를 이용해야 하는데, 운하 이용료는 2009년 기준 배 한척당 평균 25만 달러, 우리나라돈으로 아주 단순하게 달러당 1천원이라고 계산해도 2억 5천만원 수준의 통행료를 지불해야한다. 오직 배 한척에 해당하는 통행료일 뿐이고, 한해동안 수에즈 운하를 통해 이집트가 벌어들이는 돈은 이집트 전체 GDP의 1.3%가량 된다고 하니, 그 수입이 꽤나 짭짤하다.

 

또한 수에즈 운하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식민지 개척을 위해 대서양 항로가 주로 이용되어 지중해의 중요성이 다소 떨어졌었는데, 수에즈 운하의 개통과 더불어 지중해-홍해 항로가 부흥하면서 다시금 지중해 항로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끔찍한 대형사고, 사후 처리는?

인명피해는 없지만 전세계의 해상 물류의 10%를 감당해내고 있는 수에즈 운하의 경제적 피해는 앞으로도 에버기븐호 사고 처리가 되지 않는 한에선 꾸준히 누적될 전망이다. 이미 지중해에서 홍해 방향으로 진입한 배들과, 홍해에서 지중해쪽으로 향하던 배들은 그야말로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상태. 현재는 닻을 내리고 몇백척의 상선들이 무제한 대기중이라고 한다. 현재 이집트 당국에서 만조 시간에 맞춰 예인선을 투입하고 각종 중장비로 모래와 흙들을 파낼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 될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다. 특히 전세계의 원유 공급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되어, 앞으로의 유가 상승및 이에 따른 도미노의 경제적 파급은 불가피 하다는 것으로 보인다.